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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가이드 매거진 잡앤에듀]현장속으로 새로운 비상이 시작되는 곳, 공시촌 노량진 24시

공무원과 대입시험 준비생들의 메카, 서울 동작구 노량진 1동 학원가. 수십 만 명의 젊은이들이 각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시, 행시에서부터 언론사, 공무원, 임용고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이곳 노량진에서는 1~2년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고, 5년 이상 시험에 매달리는 장수생들도 많다는 게 학원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특히 요즘엔 20대 젊은 수험생들이 부쩍 늘었다는 데, 날로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 실업은 무섭고, 그래도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최고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7,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20대 젊은 수험생들의 수가 거의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급변하고 불안정한 기업환경 속에서 보다 안정적인 공무원의 자리를 택하려는 30, 40대 사람들도 많다. 경기침체로 실업자들이 늘면서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을 그만 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 이렇게 노량진 학원가의 응시생들은 해마다 10~20%씩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사시사철 수험생들로 북적이는 ‘노량국’
예전에는 시험 직전 바짝 사람들이 몰리던 것이 이제는 ‘노량국’이라는 이름이 생길만큼 사시사철 수험생들로 북적이는 노량진에는 현재 20여개의 공무원 시험 전문학원이 밀집해있다. 주로 7,9급 행정공무원과 검찰, 경찰직 준비 전문학원이다. 그리고 150여개의 고시원, 크고 작은 수험전문서점 등이 대형 학원을 중심으로 들어서있고, 그밖에 독서실과 PC방, 길거리 식당, 노트나 펜 등을 파는 노점상 등이 노량진 학원가의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비오는 날엔 건너편 수산시장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생선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노량진 거리의 일상이다.  

학원 강의실은 대개 한번에 200~300명을 수용한다. 이렇듯 수백 명의 인원을 수용하는 이유는 보통 학원들이 박리다매식으로 수강료를 비싸지 않게 하는 대신 수용인원을 늘리기 때문. 보통 학원들은 아침 6시에 문을 연다. 한 겨울에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학원가는 붐비기 시작한다. 강의실마다 길게 늘어선 줄은 5~10분 차이로 20~30번씩 뒤로 밀리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험생들의 애환이다. 6시가 넘어가면 자리는 훨씬 안 좋다. 수백 명이 듣는 인기강좌를 앞자리에 앉아 듣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 조금만 뒷자리에 앉아도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학원에서는 수험생들이 문 앞에서 버리는 시간을 아끼게 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연습장 등을 찢어 줄번호와 수업 이름을 적어 넣고 선착순 입실을 하게 한 것. 강의실 문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종이줄은 바로 노량진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미래를 꿈꾸는 그들만의 리그
학원에서 자리부터 맡고 자습실로 바로 이동한다. 그때부터 공부하고, 아침 10시 강의를 듣는다. 점심은 길거리 음식점에서 대충 때운다. 오후에 또 강의 듣고, 자습실에서 동영상을 들으며 공부하고 밤이 늦어서야 고시원으로 향한다. 이른바 공시족(公試族)들의 하루 일상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이들의 특징은 주머니가 얇다는 것, 그리고 패션에 관심이 없다는 것. 트레이닝복과 슬리퍼가 가장 잘 팔리는 곳이 바로 이곳 노량진이다.

학원가 대로변에 위치한 맥도날드(천장에는 ‘낮 12시~2시까지, 오후 5시~7시까지는 스터디를 금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젊은 수험생들은 패스트푸드점을 자습이나 공동 토론 장소로 자주 이용한다)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선주씨(24, 충남 S대 휴학 중)를 만났다. D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오전 7시에 시작되는 보충강의를 듣기 위해 아침 일찍 학원에 나왔다며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끔 패스트푸드점에 혼자 들른다고 말했다.

“어른들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직장 구하기가 힘들 거 같아요. 지방대를 나왔다고 선배들 보면 취직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그래도 공무원이라면…”

경찰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오경아씨(26, 교육학과 졸)도 같은 말이다.
“다른 직업에 비해서 여성 차별이 그래도 좀 덜한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친구들이 많아요. 경찰직 공무원은 대기업에 비해 손색없는 복지제도를 갖고 있어요. 요즘에는 경찰직 공무원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예요.”

공무원 시험의 여풍(女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학원가는 합격자도, 시험 준비생도 여성이 남성을 추월한 지 오래다. 한국사회에서 성차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된 셈이다.  

보충 강의가 끝난 또 다른 공시족들은 학원가 곳곳에 위치한 독서실로 자리를 옮긴다. 학원에도 자습실이 있지만 자리를 맡기가 쉽지 않아 독서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독서실은 대부분 10분 안에 이동이 가능한 노량진 1동에 모여 있다. 최근에는 독서실에도 산소 공기 청정기, 컴퓨터 등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한 불편은 없다.

오후 6시. 점심은 길거리 음식으로 간단하게 요기했지만 저녁까지 대충 때울 수는 없는 노릇. 한창 배고플 나이에 주머니 가벼운 수험생들에겐 그저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집이 딱이다.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담아낸 맛에 퍼줘도 퍼줘도 아깝지 않다는 넉넉한 인심까지 따뜻한 정 한 그릇으로 배부른 곳을 찾는다. 1,000원대 식권을 월 단위로 발행하는 식당도 많다. 식판에 반찬 3~4개와 국 하나가 나오는 식단. 매끼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장점이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하루하루 힘든 자기와의 싸움…

고시원은 외로운 곳이다. 현재 동작구에는 250여개의 고시원이 있다. 시험을 앞두고 고시원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져 거의 모든 고시원에는 빈 방을 찾기가 힘들고,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3~4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시원의 가격대를 살펴보면 시설에 따라 다소 가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창이 있는 방과 없는 방으로 나뉘는데 다들 가격 차이는 대략 2~3만 원선. 여기에 학원까지의 거리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최신식 고시원의 한 달 입실료는 대체로 25만~45만 원선.

H고시원에서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 한 수험생은 “집이 경기도 파주라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몇 만원 더 주고라도 방음시설도 잘 돼 있고 쾌적한 곳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많다”며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에는 고시원도 에어컨, 텔레비전, 냉장고가 한 방에 갖춰지는 등 점점 서비스나 시설이 좋아지고 있는 추세. 학원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H고시원의 경우 다른 고시원과는 차별화되는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고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그중 하나가 수험생들이 언제나 손쉽게 운동할 수 있도록 고시원 안에 헬스장을 만들어 놓은 것. 공부와 함께 체력단련까지 병행할 수 있어 수험생들은 공부에 지친 심신을 체력단련 운동으로 해소하고 있다.  

지난 여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방황하던 ‘장수생’ 김모씨는 8월 초 H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우선 마음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혼자 공부하다 보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여자친구에 대한 배신감, 외로움 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마음의 정리가 되어간다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더욱 열심히 하기로 맘먹었습니다.” 그동안의 생활을 반성하며 공부도 계획적으로 실천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항상 외로움에 시달린다. 뜻을 세우고 나온 터에 일부러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 말벗이 적어지면서 순수해지는 사람들은 맥주 한 캔만으로도 진지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

20대 대학생들과 청년실업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30대 여성, 그리고 수많은 예비공무원들까지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모든 걸 보상해 준다고. 내가 나를 이겨내고 꼭 합격해서 고향으로 가겠다고 홀로 숨죽여 다짐하는 이들은 열정이 있다. 내일의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빛나는 미래가 있다.


■글·사진 | 허윤정(객원기자)

출처 : 애듀스파가 발행하는 취업가이드 매거진 잡앤에듀
http://jobne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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